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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나는 왜 평생 운전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는가 (feat. 미국에서 10년동안 차없이 살아남기)

by 워킹나무 202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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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운전을 안해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왜 운전 안하세요?” 라고 공식인 듯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그냥 그들이 듣고싶어하는 말들을 찾아내어 적당히 둘러댔지만, 사실 내게는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가 여럿 있긴 하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운전을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리석은 한 생명체를 일깨워주기 위해 이러저러 운전의 장점에 대해 강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미국에서 10년이나 살았는데 운전을 아직도 못하냐라는 조소 섞인 말투로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기도하다.

 

사실 나의 모든 행동과 선택에는 다 이유가 있고, 대부분의 이유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반영하고자 하기 위한 것이다.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더 지킬수 있기 때문에 운전을 하지 않는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누군가가 평생 운전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에 대해서 글을 써 내려가 보고자 한다. 운전을 하는 것에 대한 장점은 이미 독자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쓰는 것도 아니기에,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이에 더해서, 10년동안 미국에서 운전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도 경험을 간략히 공유해 보고자 한다. 

 

‘평생’ 이라는 말을 썼다. 사실 이 단어는 굉장히 무책임한 단어이긴 하다. 아직 인생의 절반을 살지도 않았는데 ‘평생’ 에 대한 결심은 섣부르다. 이 글에서는, ‘평생의 결심’을 ‘그 정도로 강한 결심’ 정도로 해석해 주시면 될 것 같다. 아직까진, 인생의 3분의 1이 조금더 지난 지금, 심지어 한 아이의 아빠임에도, 여전히 운전을 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1. 나는 건강히 오래 살기로 결심했다.

어릴적 아버지는 주말에 집에 오시는 주말부부였다. 회사는 강원도, 집은 서울이어서, 토요일 새벽에 장거리 운전을 하셔서 집에 오시고, 일요일저녁에 또 장거리 운전을 하셔서 회사 근처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시곤 했다. 돌이켜 보면,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몸짓에는 항상 불안함이 서려있었고, 그러한 불안함은 사람의 감각을 마비시켜 빠른 속도에 둔해지고, 잦은 사고를 내기 일쑤였다 (장담컨데 아버지가 운전이 미숙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아버지께서 떼인 자동체 제한 속도 딱지 (1개당 5~10만원 하는 벌금) 만 모으면 족히 100장은 넘을 것이고, 어머니는 딱지 우편이 한장씩 날라 올 때마다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쉰 기억이 많다.

 

어느날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연락이 되지 않자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다녔고, 어떤 한 병원에 계시다는걸 알 수 있었다. 자동차가 난간 밖으로 떨어져 전복이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10년도 더 된 일이기에 그때 당시의 정확한 기억은 많이 없어 졌지만,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의 느낌만큼은 생생하다. 

 

청년시절, 속도를 굉장히 즐기며 살아왔다. 자전거는 무조건 빨리 타야하고, 손을 놓고 타야 제맛이다. 교내 내려막길의 속도계측기에서 기록을 세우고자 내려막길에서 돌진하다 방지턱에 걸려 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때는 한창 여자친구 (현재의 와이프) 의 도움으로 겁쟁이페달이라는 자전거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을 때였다. 번지점프와 청룡열차 같은 익스트림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나는 몽상가다. 언제, 어디서든 생각과 상상과 인지의 경계를 들락날락하며, 가끔씩 온천에 몸을 담군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격렬히 춤을 추고 있다. 그러지 말아야할 때 (예를들면 횡단보도를 걸어갈때) 도 그러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뇌의 전파가 인지가 아닌 상상쪽으로 흐르게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감각이 무뎌져 길을 가다가도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와 부닥치기 일쑤였다. 

 

스물한살, 군에 입대하고 상병즈음이었을까, 막 어른들의 생각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원인은 불명. 부검을 했던 의사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혹은 과로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한다. 나비효과를 믿는 지금의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아버지의 질주를 말릴수 있었을까.

 

사람은 누군가를 잃게 되면 굉장히 많은 생각을 깊게하게된다. 어두움이란 사람을 깊어지게 만드는 공간인가 보다. 가만 생각해보니 굉장히 억울했다. 나는 아버지와 성인으로써 의미있는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눠본적도 없는것 같은데, 아버지는 한달뒤 누님 결혼식도 못 보고 가시는구나, 자식들 자식들 잘되는 것도 못보고 가시는구나, 뼈빠지게 가족들 부양만 하시고 가시는구나. 뭔가 억울하고 분통했다. 당사자인 아버지가 더 억울하실 것이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아버지의 부검장면을 지켜본 사람은 나 홀로였다. 그 당시에는, 어두움에 잠식되어 버린채, 아버지의 싸늘한 시체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꼭 성공하고,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아서 많은 것을 누리고 가겠다고. 

 

운전은 이러한 나의 다짐에 굉장히 ‘반’하는 행위임을 직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리고 매실이 (딸아이) 가 나오고 나서는, 건강히 오래 살고자 하는 나의 의지는 아버지 앞에서의 다짐때문만이 아니게 되었다. 운전을 안하기로 한 남편의 의사를 아무런 불만없이 존중해주는 와이프에게도 굉장히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와이프도 아직 운전을 못하기도 한다 🙂

 

나의 직감 말고도, 실제로 운전을 하지 않음으로써 수명을 늘려주는 다른 이유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벤트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다. 예를들면, 가까운거리는 웬만하면 걸어다닌다. 여기서 가까운거리란 도보 30분까지도 우리에게는 가까운 거리다. 우리 부부는 또 걷는걸 즐겨해서 딸아이가 나오기 전까지는 1시간 거리도 흔쾌히 걸어다녔다. 

 

2. 나는 행복해지고자 결심했다.

어릴적, 아버지가 운전을 하면서 행복해 하신, 심지어 기분 좋은 모습이라도 본 기억이 흐릿하거나 없다. 대부분이 무표정이다가, 개념 없는 운전자나 혹은 보행자를 보면 혼잣말로 화를 내기 일쑤였다. 가끔은 아버지가 잘못해 보여도 지적을 하며 화를 내시는것 같기도 했다. 

 

그 시절, 주말에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에서 서울로의 왕복 운전 시간은 10시간이 남짓 걸렸다. 그정도의 운전은 누구던간에 사람을 피곤에 찌들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아버지의 주말은 침대에서 주를 이루셨고, 아버지와의 추억은 매주 목욕탕에 가는것 말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장거리 운전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다. 악질같은 1층 빌라 사람들 때문에 주차문제로 매주 골머리를 썩히시곤 했다. 우리는 아파트가 아닌 빌라에 거주 했고, 1직선으로 된 주차공간에, 누군가가 가장 앞에 차를 대 놓으면 뒤에 아무리 공간이 남아도 다른 차들이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1층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빌라의 주인인양 완고히 가장 앞자리를 지켰고, 아버지는 주차를 할 때마다 1층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 뒷자리에 주차하곤 했다. 

 

13년 동안, 그들의 협조를 위해 1층 벨 문을 누른 횟수는 적어도 1248번은 넘을 것이다 (토요일에 들어올때와 일요일에 나갈때). 아버지는 이러한 주차의 스트레스로 주말에는 웬만하면 운전 하기를 거부하시는 경향이 있으셨다. 한 번 나갔다오면 또 두번의 벨을 눌러야 하기 때문에…  덕분에 우리집의 사소한 가족 여행의 횟수는 현저히 낮다. 행복은 ‘사소한’ 여행으로부터 오는 것임에도 [관련글: 행복에 대한 고찰].

 

나는 길치다. 낮과 밤의 길이 다르게 보인다는 그 길치말이다. 길 표지판이 떡 하니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가는대로 길을 가다가 방향을 잃어버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고, 미로 같은 호텔 복도에서는 항상 왼쪽과 오른쪽이 헷갈려 빙-둘러 가곤한다. 구글 지도 없이 다니던 시절, 여행을 갈 때면, 길을 헤매기 일쑤고, 길을 잘 찾지 못해 친구들과의 약속에 종종 늦곤한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길에 툭하면 긿을 잃어버려 울면서 슈퍼마켓에 들어간 적이 많다 (부모님께 전화를 하기위해..). 지금은, 길과 지형에 능숙한 와이프를 따라다니면 어디든 갈 수 있다 🙂 

 

나는 작고 사소한 것들에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사람이다. 작은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 누군가에게 사소한 실수를 하는것, 새로산 물건의 작은 기계 결함, 학창시절 교과서 옆 쪽 구석지의 작은 주석 하나하나에 대한 집착으로 오는 스트레스, 증가하는 렌트비, 원인모를 작은 아픔, 어떤 서류에 숫자 하나를 잘못 기입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것, 문자 하나가 틀려 생긴 프로그래밍 버그, 의도가 불분명한 누군가의 한마디, 소음, 1분 지각하는 것, 외부 환경으로 인한 생각의 끊김.  

 

그러한 작고 사소한 노이즈들은 내 머리를 맴돌고, 하루, 일주일, 길게는 한해를 걸쳐 스트레스를 받기도한다. 성인이 되고 그러한 잡음들을 다스리는 훈련을 많이 하였지만, 여전히 가느다란 폭탄의 심지에 타들어가는 작은 불꽃을 끄지 못해 내안에서 폭발하는경우가 종종있다. 가슴 한켠에 폭발을 머금고 견디고 있자면 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내 몸이 갈려나가는 느낌이, 난다.

 

운전 면허를 따고, 자동차를 구매하고, 관리하고, 결함을 고치고, 온 몸에는 깊은 긴장이 들어간 채 장시간 운전을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노라면, 몸이 갈기갈기 찍겨나가 불행하기 그지없다. 나의 무의식을 존중하여 나는 행복하기로 마음먹었고, 나의 불행을 만드는 노이즈의 근원을 차단하기로 결심하였다, 운전을 하지 않기로.

 

사람들은 가끔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동차가 없으면 더 불행한거 아닌가? 그건 불행함과 불편함에서 오는 혼동일 수 있다. 불편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지금 내가 그렇듯이. 행복이 꼭 빠름과 자극적인것에서 올 필요는 없다. 나의 행복에 대한 정의는 ‘느림’ 에서부터 오고, 그것에 대한 역치는 굉장히 낮다. 자동차에서 오는 시간을 아껴, 좀 더 사소한 행복들을 좆으며 살고 있다. 그냥 가족들과 여유롭게 바람을 맞으면 걷기만해도 행복하다 [관련글: 샌디에고 느린 가족 여행] 

 

3. 나는 경제적 자유를 얻기로 결심했다.

사실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들 중에 자동차가 있는 비율이 훨씬 많을 것이므로, 여기에는 통계적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딸아이가 나오고 운전을 하기로 결심한 와이프이기에 (아직 결심만..), 언젠가는 우리도 차를 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드머드, 즉, 복리로 재산을 굴리기에 필요한 최소 기초자금, 를 만들기 전까지는 자동차의 구매를 최대한 미루고자 한다. 

 

기름값, 벌금, 유지비, 보험비, 주차비, 자동차 소모품, 자동차 데코레이션 용품, 세금, 더 잦고 소비적인 여행과 식사…

 

지금의 우리 가족은 행복한 뚜벅이 이지만, 언젠가는 100억 자산가가 되어 포르쉐를 타고다니는 와이프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행복한 남편이 될 것이다.

 

4. 차 없이 미국에서 10년동안 살아남기.

미국에서 유학을 시작하고 나서 어느덧 시간 10년 남짓 흘렀다. 유학길에 오르기전에 만난 모든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차 없이 살 수 없다" 고 겁을 너무 많이줬다. 그들도 어디서 듣고 말했음이 분명하지만, 어떻게 하나같이 똑같이 말을 할수가 있을까…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차 없이 살 수 있다. 물론 단점은 있다, 아니 많다. 아래에는 워킹나무가 어떤식으로 살았는지 대략적으로 묘사를 할 테지만, 그것들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독자들의 선택에 맡기겠다. 아래의 얘기는 주로 매실이 (딸아이) 가 나오기 전의 일들이고, 자동차가 없는 현재의 삶은 육아노트에서 다시 포스팅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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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어디에서나 대중교통은 있다. 버스도 있고, 트램도 있고, 기차도 있다. 다만, ‘기다림’이 필요한 상황이 많다. 한 번 버스를 놓치면 15분~30분은 기다려야한다. 주말에는 버스와 트램의 주기가 반으로 줄어든다. 와이프와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웬만하면 우버는 정말로 필요할 경우에만 탄다. 예를들면 굉장히 늦은경우, 혹은 버스가 없는 시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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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갈 수 있는 관광지 위주로 간다. 대중교통만으로 갈 수 있는 관광지도 꽤나 많고, 사실 그정도의 여행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히 행복했다. 

- 30분 거리의 카페도 마실 나갈겸 항상 걸어다닌다. 와이프는 심지어 자전거도 잘 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대중교통을 뺀다면 ‘걷기’가 거의 유일한 옵션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며 걷는 시간이 그 어느때보다도 행복했다. 

 

- 식재료도 버스를 타고 구해온다. 타겟, 홀푸드 등의 대형 마트에 버스를 타고 가서, 양옆에 두개씩 총 네개를 끼고 오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한인 마트는 꽤나 먼거리에 있어 한 번 갈 때 많이 사왔어야 했기 때문에, 가방도 하나씩 더 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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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10L 짜리 물 (Spring water) 을 두개 씩 나르고 매주 한번씩 한다. 승모근에서 불이난다. 눈 오는날에 무턱대고 물을 샀다가 버스가 끊겨 곤란했으나, 마침 근처에 사는 친한 외국인 친구가 지나가서 10L짜리 하나씩들고 30분을 걸어 집으로 귀가한 적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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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가 보고 싶은 관광지가 있지만 차로만 갈 수 있다면 ‘가이드’ 를 알아보고 다녀왔다. 특히, 요세미티에는 가이드 패키지가 많다.

 

- 등교 혹은 출근길에 자전거를 많이 사용했다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시스템도 잘 되어 있는 곳이 많다). 미국은 도로가 넓기에 자전거 친화적인 도로들도 많다.

 

- 외식을 하면 되도록 가까운 곳에서 한정적은 가게들로 하였고, 주말에나 대중교통을 타고 가서 새로운 곳을 도전해 보기도 한다.

 

- 굉장히 느린 (누구에게는 굉장히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는) 일상을 살았고, 지금까지 와이프는 차가 없음에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었다.

 

- 매실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는 우버를 불러 갔다. 우버 드라이버는 자신의 좌석에 양수를 쏟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며 운전을 하였고, 와이프는 세상을 집어 삼킬듯이 고함을 지르며 병원에 갔다.

 

- 웬만하면 배달은 안시키지만, 너무 귀찮거나, 어딘가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우버 딜리버리 혹은 식재료도 배달 시켰다.

 

- 혹시 어떤 특정한 상황에 대해서 차 없이 어떻게 대처 했는지 궁금하여 댓글에 질문을 준다면, 답변 할 수 있다 :)

 

 

나는 왜 평생 운전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는가? 건강히 오래 행복하게 부유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항상 감사드린다.

 

- 워킹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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