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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실리콘 밸리 엔지니어 혹은 연구원의 삶 (2부-현재: 돈에 의한 잠식)

by 워킹나무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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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쓸지 말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나의 실리콘벨리의 삶은 누군가의 실리콘밸리의 삶을 대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실리콘밸리의 삶 혹은 관찰이라고 보면 될 것 같고, 이것의 다른 누군가의 혹은 다른 회사에서의 삶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걸 전제한다.

 

지금은 어떤 한 테크기업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막 회사에 들어왔을때 (과거) 와 대략 3~4년 정도 지난 지금의 시점 (현재) 그리고 나보다 오래다닌 사람들의 관찰을 기반 (미래) 으로 3부작으로 나누어서 그려보고자 한다. 이번편은 현재를 다루고, 과거에 대한 삶은 여기에 그려 놓았다.

 

현재: 돈에 의한 잠식

돈의 흐름이 굉장히 빠른 실리콘밸리 테크회사에서 몇년 째 일을 하다보면 중요한 가치들이 돈에 점점 잠식되어 감을 느낀다. 생각보다 삭막하다. 많은 것들이 돈으로 돌아가고, 돈에 의해 정의 되고, 돈으로써 관계를 맺는것 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동네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박사과정에서 하던 연구와 논문들은 더이상 무의미해짐을 느낀다. 회사는 당연하게도 이기적이면서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장소이다. 회사에 도움이 되는 혹은 그런 것 처럼 보이는 일들을 한 사람들이 진급을 먼저 한다. 즉, 돈이 되는 일들을 해야 진급을 한다. 흥미롭게도, 정직원을 뽑을 때는 박사 기간동안의 ‘연구’ 실적을 기반으로 고용하나, 정직원으로 고용함과 동시에 ‘연구’ 이외의 것을 통해 사람을 평가한다. 돈이 되는 것들은 보통 엔지니어링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자연스레 ‘연구’는 인생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연구를 하러 온 ‘인턴’의 관리도 소홀해 지기 시작한다. 보통의 정직원들의 마인드는, 잘하는 인턴이 와서 알아서 잘 하다가 알아서 논문을 잘 제출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초심을 잃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맡는 기회를 얻는 것 또한 그리 만만치는 않다. 

잘 될 것같고, 돈이 될 것만 같고, 이 임무를 완수하면 진급이 쉽게 될 것만 같은 일에는 자연스레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려든다. 그 사이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일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뭐라도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 진급을 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행위를 싶지 않아 그냥 한발짝 물러나서 욕심을 내려놓고 유유자적하며 남들이 하지 않는것 들을 하는 편이긴하다. 그래서 진급은 늦다.

 

참고로, 사람들이 진급에 목을 매는 이유는 실제로 그에 따른 보상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한 번 진급할 때마다 거의 두배가까이 자신의 몸값이 띈다고 생각을 해보면, 왜 그렇게 진급에 목을 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급을 하지 못하면, 매년 3~5프로정도의 임금이 오를 뿐이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 또한 많은 부분이 돈으로써 움직이는 것 처럼 느껴진다.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사람 주변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상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과 연줄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회사에 중요한 일만을 쏙쏙 골라서 하는 사람들에게도 발걺의 끊기질 않는다.

물론,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으나,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일을 잘 못 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암묵적인 무시를 받기 일쑤고, 사람들이 똥 보듯이 가까이 하지 않으며, 가끔은 그사람을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고, 인성이 나빠보인다고 까지 오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똥이나 되어보자. 그것 아는가? 똥이 되면 회사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가 있다 :)

 

자연스레 잘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중국인들이 많다.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더욱 강한 공감대와 관계를 형성하게 되어 있고, 또 그러한 사람들의 머릿수가 가장 많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기회가 되어주고 도움이 되어준다. 한국인들은 어딜가든 소수 의견일 뿐이고, 서로 뭉치지도 않는다. 결국 다수의견을 만들어내는 중국과 인도사람들과 유하게 지낸 방법을 터득한 한국인들이 대체로 회사에 더 잘 적응하고, 진급도 빠르게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 (줄 또는 라인으로도 표현되기도 한다) 을 만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말이 미국회사에서도 통한다. 좋은 라인을 탄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룹의 정체성이 확고하고, 좋은 주제들을 가지고 회사를 리드하고, 팀내 인프라가있어서 서로를 이끌어주어, 적은 시간으로 높은 효율을 내어, 그리 아등바등 살지 않고도, 쭉쭉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굉장히 정체되어 있고 고여있는 느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자신의 회사와 남의 회사의 주가는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다른 회사에 비해 주가가 오르면 웃고 직원들을 춤추게 하는 반면, 떨어지면 상대적 박탈감이 있다. 

돈에 의해 '꿈' 이라는 가치는 점점 잠식되어가고는 있지만, '가족의 행복' 이라는 가치가 잠식되는 걸 막고자 항상 발버둥 치고 있다. 특히, 매실이를 낳고난 뒤 [관련글: 실리콘밸리 아빠의 육아노트], 워라밸을 더욱 중요시하게 된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자유로운 영혼으로 다니고 있다. 처음과는 달리, 진급이야 안되면 어쩔수없지 라는 마인드로 다니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하고 싶지않은 일들은 최대한 안하며, 나에게 중요치 않은 일들은 쳐낼줄도 안다. 힘을 빼고 회사를 다니니 아이러니 하게도 일이 더 잘 풀리는 느낌도 있다. 욕심을 내려놓고 남을 상대하다 보면, 오히려 일이 잘풀리는 경우가 또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많은 경우에 잘못된 인간관계는 욕심으로 부터 오게 마련이다. 욕심을 내려 놓고 회사를 다니니 오히려 회사에 더욱 정이 간다.

 

일개의 직원이 컨트롤 할 수 없는 것도 굉장히 많음을 깨닫는다. 미국의 회사라고해서 굉장히 자유로울 것 같지만, 결국 나 자신이 정확히 컨트롤 할수 있는 영역의 범위는 굉장히 좁다. 회사가 원하는 것을 해야하고, 회사가 원하는 선택지도 굉장히 적다. 하고자 하는 것에는 여러 이유로 인해 제동이 걸리기 십상이었다. 결국, 회사의 속도를 알게되고, 회사는 그 이상의 속도로 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무력감을 느낄때가 분명히 있다. 이는 즉,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을하며 회사를 다니는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돈으로써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고 결국 현타만 남는다. 예를들면, 나보다 2배, 4배, 10배 이상의 돈을 받지만, 나와 비슷한 시간을 할애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되면 현타가 올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물안 개구리의 80프로의 착각일 확률이 높다. 그들이 지고 있는 책임의 무게는 내가지고 있는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10배는, 책임의 값어치이다. 그럼에도 현타가 오는건 어쩔 수 없고, 그것이 싫으면 빨리 진급하는 수 밖에 없다.

 

회사에서 자신과 마음이 ‘진심으로 진정성있게 제대로’ 맞는 사람이 단 한명만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성공한 회사생활이다. 여전히 그 단 한명을 찾지 못하였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실리콘밸리 회사의 복지와 일하는 분위기는 정말 좋다. 휴일이 굉장히 많다. 기본적으로 10월은 할로윈으로 들 떠 있고, 11월은 추수감사절로 차분해지며, 12월은 크리스마스와 연말로 모든 긴장이 풀린다. 12월이 되면 사람들이 회사에서 보이질 않는다 :) 회사차원에서 나오는 복지금이나 지원금 (예를들면, 운동 등록비나 운동 장비를 위한 구매비용 등) 도 다양하고, 가족들을 위한 이벤트도 가끔씩 있다. 

 

코로나 이후부터 지금까지, Remote 혹은 Work from home (재택근무) 는 굉장히 흔한 문화가 되어버렸다. 일주일에 2번정도만 나가는 회사도, 3번정도만 나가는 회사도 있지만, 매일 출근을 해야하는 회사는 드물다. 일과 시간에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다. 일과 중에 샤워를 한번 쏴악 해주면 정신을 차리게 되고 다시 일을 집중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회식은 그리 많지 않고, 있다 해도 밥한끼 먹는 정도이다 [관련글: 미국회사 회식 문화]. 술을 권하는 문화는 제로다. 심지어 회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뭐라하지도 않는다 (물론 매니저가 마음에 담아 놓을 순 있겠지만.. :)

 

시간이 흐르고 적당히 부를 축적하고, 자녀들이 생기다보면 이제 집을 사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가도 실리콘 밸리의 집값을 보면 그런생각이 쑤욱-하고 들어간다. 나쁜동네의 집값은 몇 십억정도요, 괜찮은 동네의 집값은 100억정도요, 좋은 동네의 집값은 몇백억이다.

 

지금은 '부' 와 '자유' 와 '행복' 이라는 가치들 사이에서의 균형을 이루고자 노력을 하며 회사가 흘러가는대로 또 그 속도에 맞춰 나를 맡겨보고 있다. (다음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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