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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차 없는 아빠 [실리콘 밸리 아빠의 육아노트-15개월차]

by 워킹나무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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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차 매실이네 집에는 차가 없다. 아니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아빠는 운포 (운전포기) [관련글: 나는 왜 평생 운전을 안하기로 결심 했나] 를 선언했고, 엄마는 아직 면허가 없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차 없는 가족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려 보고자 한다. 현재는 매실이 생후 15개월차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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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이 엄마가 출산에 임박했을 즈음의 얘기다.

의사 선생님은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면 연락을 주고 출산병원에 방문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주셨다. 하지만 5분간격이라는게 상당히 애매하다. 이게 진통인지 애기가 그냥 발차기하는건지. 시작점을 언제를 기준으로 5분인건지 단지 스위치로 켜고 끄는것이 아니기에. 

 

전화를 할까 말까 주저하는 동안에 고통의 단계가 급격히 변하였다. 디아블로라는 게임에는 “노말, 나이트메어, 헬” 이렇게 세 단계의 레벨이 있는데, 노말에서 갑자기 헬 난이도로 바뀌는것과 같다. 물론 남자인 나로써 와이프의 고통을 알 방도는 없지만, 와이프의 복식 샤우팅의 크기로 가늠이 가능 했다. 헬 난이도에서는 신물이 올라오고, 더이상 몸을 움직일수 조차 없는 고통이 있고,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주저하면, 더이상 산모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자동차가 없는 나는, 일단 우버 (미국의 택시) 를 부르고, 출산가방을 급히 챙기고, 와이프를 부축하여 아파트 건물밖까지 나간다. 와이프는 걸을 힘 조차 없어, 집 앞으로 우버를 타러 가는 그 가까운 거리를 가는것 조차 챌린지다. 

 

우버가 왔다. 우버는 와이프의 헐크고함에 저 멀리서부터 이상함을 감지한 듯하다. 문을 열고 와이프를 태우는데, 우버 기사의 표정은 영 불편하다. 자신의 택시뒷자리에 양수를 흘릴까 염려되어 계속 우리를 주시하고, 뒤의 상황이 어떤지 끊임없이 물어본다. 화가 났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행히 양수는 흐르지 않았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 후, 애기의 머리꼭지가 이미 보이기 시작했고, 의사선생님이 애기를 받기 시작하고 나서 15분만에 매실이가 나왔다. 와이프는 진통제 하나 없이, 데미지를 전부 받아가며 출산을 하였다… 출산후 실제로 몇분간 기절을 했는데, 무서운 상상이 엄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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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당일

미국에서는 산후조리원이 없다. 2박 3일의 입원기간이 지나고 나면 가차 없이 나와야한다. 카시트가 없으면 퇴원조치를 시켜주지 않기에, 일단은 카시트에 눕혀 병원을 나왔는데, 그 다음부터가 멘붕이다. 너는 누구니? 이 조그만 생명체를 데리고 가야하는데, 한번도 카시트를 자동차에 달아본 적이 없어서 우버를 불러 긴장한다 (Nuna 브랜드의 카시트가 자동차에 설치하게 가장 쉬운 제품이다, 관련글: 육아아이템 총정리). 이렇게 매실이와 함께하는 첫 우버를 탔지만, 그 다음부터는 우버를 되도록 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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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 가야할 때면 우리에게는 네가지 옵션이 있다. 우버, 버스, 트램, 기차. 문제는 우버를 타면 유모차를 실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카시트를 먼저 빼고, 유모차 안에있는 짐들을 다 빼고, 유모차 뼈대를 접고, 트렁크 뒤에 유모차를 싣고, 카시트를 자동차에 고정시키고 매실이를 태운다. 버스, 트램, 혹은 기차는 그냥 유모차에 매실이를 태운 채로 들어갈 수가 있고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따라서 우리는 매우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실이가 15개월차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유모차와 함께 대중교통을 타고 있다. 미국 안의 어딜 가든, 우리는 유모차와 함께 뚜벅, 뚜벅 걸어간다 [관련글: 샌디에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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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날 우리 가족의 생활반경은 굉장히 좁다. 회사는 걸어서 15분 거리, 대형 마트는 걸어서 15분 거리, 다양한 음식점들은 걸어서 15분 거리, 매실이 놀이터는 걸어서 15분 거리. 15분 거리 인생을 살고 있다. 트루먼 쇼의 버뱅크보다 적은 반경의 테두리안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매실이가 나오기 전에는 뚜벅이 인생으로, 매실이가 나오고 난 뒤에는 유모차와 함께한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로서, “저희는 유모차로 버스 타고 다녀요.” 하면 이상하게 보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무슨 아동학대를 하는 부모를 보는듯한 눈초리로 보기도 한다 (그러한 눈초리는 대부분 한국사람들로 부터 였긴하다). 그들의 대부분의 주장은, 버스가 위험하고 불편 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는 동의한다. 확실히 버스는 자동차 보다 위험하다. 통계적으로 당연하게도, 사람들에게 노출이 많이 될 수록 더 위험하다. 병균, 실제로 이상한 사람, 소음 등등..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똑같이 사람이 타는 운송수단이고, 미국 사람들은 아기에게 굉장히 친절한 천사다 (심지어 부랑자 들도 아기에게는 친절히 인사해준다). 한국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매실이에게 자주자주 인사해주고, 바보같은 행동도 해주며, 까꿍이도 많이 해준다.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기 힘든 미국 생활에서, 이렇게라도 부모가 아닌 다른사람들의 표정과 행동과 소리를 보여주는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매실이가 코로나에 걸린적은 있지만 대중교통이 아닌 스토리타임 [관련글: 스토리타임] 에서 걸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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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없는 우리가 장을 볼 때는 운반체가 하나 더 출격한다. 바로 웨건이다. 아마존 30불정도 주고산 웨건이다. 이사하기 위해 샀으나 지금은 매실이 산책나갈 때 혹은 장보기용으로 사용한다. 매실이는 웨건에 타는 걸 좋아한다. 다른 뷰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유모차에서는 거의 반 누운자세로 세상을 올려본다면, 웨건에서는 마치 놀이동산 칙칙폭폭 열차를 타듯이 두손을 웨건에 올려놓고 이쪽저쪽 고개를 돌려가며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만의 공간이 생겨난 듯 하니 그 안에서 책도 읽고, 간식도 먹고, 드러 눕기도 한다. 내리막 길에서는 청룡열차가 되기도 하며, 매실이가 걸을 때 보조해 주는 워커의 역할도 하기도 하며, 뚜벅이들에게 소중한 무거운 짐을 날라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유모차와 달리, 안전장치가 없어 굉장히 조심히 그리고 섬세하게 운전을 한다.

 

사실 아빠는 계속 자동차가 없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느리게 행복한 우리집에 ‘빠름’ 한 스푼을 넣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지켜오던 행복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다. 느림과 지루함 속에서 아이의 창의력은 폭발한다고 믿고 있고, 불편함 속에서 위대함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느리게 살아감으로써 필요함 그 이상의 과잉을 만들지 않고, 매실이가 느림, 그 자체의 선율을 충분히 음미하고 소화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물론 , 남들이 다 갖고있는 것들을 갖지 않아도 훌륭히 딸내미를 키워낼 수 있음에 자신도 있다. 매실이가 운전을 할 건지 말건지의 선택은 훗날 커서 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지키기위해, 엄마는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행복을 맡고 있는 엄마의 생각은 좀 다르다. 엄마의 생각은 매실이가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매실이가 커서 학교를 다니게 환경적 요인이던, 물리적인 요인이던, 매실이의 심리적인 요인이던 무조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본인이 운전을 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엄마의 결심은 임신하고나서부터 섰지만, 아직 매실이 키우기에도 요즘엔 벅차보인다. 그래도 언젠가는 엄마의 운전하에 우리가족도 차를 사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 

 

차 없이 느리게 다니는 지금의 시점을 좀더 깊게 매실이와 와이프와 행복하게 보내야겠다.

 

- 워킹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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