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15개월차 매실이와 새로운 어린이 박물관에 가 보기위해 실리콘 밸리 최고의 부자마을 팔로알토에 가게되었다 [관련글: 팔로알토 어린이 박물관]. 이러한 부자마을에 가면 한 집의 막내아들로서, 한 집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한 집의 아빠로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팔로알토 아빠
팔로알토의 집값은 실리콘 밸리에서 부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동네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기에 좋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자녀들이 말이다.
집값은 당연히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비싸게 형성 되어 있다 (미국 집 매매사이트인 Zillow 웹페이지를 둘러보면, 2개의 방이 딸린 저렴한 집이 20억정도, 프리미엄이 조금 붙고 마당이 조금 괜찮다 싶으면 100억은 줘야 하는 듯 하다). 마을은 고요하고, 길은 널찍하며, 디즈니에나 나올법 한 성 같은 집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사방이 아카사이 향 가득한 나무들로 채워져 있어 마치 상쾌한 메타세콰이어길을 연상시킨다.
팔로알토의 놀이터에는 푹신푹신한 인조 잔디가 깔려 있어 다칠 위험이 적고, 건물만한 고목나무가 안락한 그늘을 형성하여 무더운 햇볕에도 아이들이 시원하게 놀수 있도록 도와준다. 매실이와 이러저러 다양한 놀이터를 돌아다녀 본 결과,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의 여부’는 놀이터의 품격을 나타내는 기준의 척도이기도 하다. 가장 높은 미끄럼틀의 높이는 무슨 놀이기구를 연상시키는 듯 저 하늘에 달려있고, 놀이터의 넓이는 축구장만한 공원 전체를 점유하고 있고, 독특한 형태의 체험형 조형물들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자극한다.
팔로알토는 스탠포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초/중/고등학교의 학군이 가장 좋은 동네이다. 부모들은 마음만 먹으면 1만불 (1300만원) 을 1만원처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1만불은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돈들이 알아서 굴러서 다음날 채워질 테니 말이다. 그러한 재력을 바탕으로 자녀들의 교육비와 건강한 성장에 진심을 쏟아 붓는다. 그들의 자녀들은 자연스레 다른 그들의 자녀들을 만나게 되고, 자녀들이 커감에 따라 또 다른 그들이 되어간다.
산호세 아빠
산호세 아빠의 가족은 시내 (미국은 한국과 달리 시내의 집값이 가장 싸다) 의 어느 아파트의 한 칸을 점유하고 있고, 점유의 대가로 매달 4000불을 누군가에게 지불한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클럽의 소리가, 울려오는 베이스 소리의 진동이, 그리고 오토바이의 고동치는 모터소음이 집안까지 느껴진다. 건물전체로 연결된 팬에서는 누군가가 태운 담배연기가 팬을 비집고 흘러들어와 밤낮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가스!가스!가스!”를 외치며 공기청정기를 틀고 창문을 여는 것 밖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산호세아빠의 물건을 구매하는 기준은 세일을 하느냐 안하느냐이다 (미국 마트에서는 세일을 한 가격과 하지 않은 가격이 많게는 50%까지 차이가 나기도 하고, 세일을 자주 하기도한다).
산호세의 놀이터는 작은 테니스장 정도의 크기로 몇개의 미끄럼틀과 몇개의 그네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폐공사장에서 가지고 온 듯한 싸구려 목각으로 바닥은 깔려져있어 조금만 걸어도 뿌연 먼지가 올라오고, 작은 천막이 놀이터를 덮고 있지만 햇볕이 강한 정오에는 천막의 효과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 아이들은 그들만의 동굴에서 피해 있다가, 해가 질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한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말의 광란이 휩쓸고간 산호세 다운타운의 거리는 쓰레기로 가득하고, 거리에는 홈리스들의 행위예술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들은 무언가의 분노에 항상 가득차 있고, 기괴한 손짓과 함께 워터파크 (미국욕의 한국발음 :) 를 굉장히 크게 외치며 돌아다니기 일쑤다. 비좁은 길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많아 어째 좀처럼 피할수가 없어 빠르게 유모차를 끌고 앞으로 달려나갈 뿐이다. 거리에는 값싸고 알레르기를 자주 유발하는 값싼 가로수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환절기의 알러지는 도무지 피할 도리가 없다.
산호세 아빠의 손에 자라고 있는 매실이에게는 고마울 따름이고 때로는 가슴 한 켠에 미안함도 있다. 새벽녘까지 들려오는 클럽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천사같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어디 하나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관련글: 성장 14개월].
팔로알토 아빠들이 매실이와 비슷한 나이 (1~2살 남짓) 의 아이와 함께 팔로알토에서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은 세가지다.
첫째. 부모로부터의 도움을 받는다. 부모들이 이미 큰 부를 일궈놓았기에, 그 부는 다음세대, 그리고 그 다음의 다음세대까지로 이어간다.
둘째. 매우 어린나이에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시작하여, 매우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은 경우다. 빠르면 스무살 중반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는사람이 수두룩 하다. 그러한 사람들이 15년정도 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면 지금 팔로알토에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셋째. 투자가 대박이 난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서 대박이 나던 (예를들면 10년전의 엔비디아나 테슬라를 다니며 주식을 팔지 않은 사람들), 자신이 투자했던 곳이 대박이 나던, 혹은 코인의 물결을 타고 대박이 나던. 어떤이유로던 대박이 났고 팔로알토의 집값과 물가를 감당할수 있게되는 경우다.
나무는 첫째도 안되고, 둘째도 안된다.
가능성은 세번째의 경우가 가장 높으나, 나무에게는 투자로 부를 일구기에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나무의 대부분의 투자는 빠른 시간에 대박이 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고, 현재의 자산을 잃지 않도록 설계한 투자이기에 복리의 효과를 누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20년은 필요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 20년동안 매실이는 이미 많이 커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실이가 어릴적부터 추억을 오래 간직할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하는 것은 나무의 옵션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산호세 아빠는 팔로알토 아빠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줄 수 없는 그 무언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에 대해, 혹은 팔로알토 아빠들만큼은 해줄수 있는 무언가에 대해 항상 깊게 생각하고 고찰하고 고민한다. 매실이에게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산호세 아빠는 결심한다.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부자의 마인드가 아닌 부자가 되어가는 마인드를 가르쳐 주고 싶다.
한 사람의 간절함으로 부터 오는 가슴뛰는 용기와, 그 용기로부터 마주하는 뜻밖의 행운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낙관과 부정의 적절한 균형점으로 부터 오는 노련함을 이해시켜주고 싶다.
폭 넓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누군가를 공감해 줄 수 능력을 길러 주고 싶고, 또 그런 공감으로부터 지혜를 배워가게 해주고 싶다.
더 크고 많은 물고기가 어디에 있을지 상상해 낼수 있는 혜안을 길러주고 싶고,
물고기를 잡을 때의 그 생동감과, 물고기를 잡는 기술을 향상 시켰을 때의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위의 모든것들을 아빠로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매실이가 공감력이 풍부한 그리고 행복한 올라운더로써 부를 보람차게 일궈내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워킹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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